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정조문화권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정조문화권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일제강점기의 가장 큰 폐단은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잃게 만든 것입니다. 무려 36년의 세월동안 한민족의 문화는 가치없는 것으로 강요받다보니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해방 이후 손진태 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가들에 의해 신민족주의 사관이 등장하면서 일제의 잘못된 문화인식은 깨트려졌으나 인식의 완전한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그러다보니 자기 지역의 오랜 전통문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저평가하거나 아니면 단절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지역도 그런 문화수준이 지속되어 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우리 수원지 김준혁칼럼 | 김준혁 한신대 교수 | 2020-10-07 16:04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용주사의 비극(悲劇)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용주사의 비극(悲劇) 용주사(龍珠寺)에 불이 났다. 그것도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가 봉안된 호성전(護聖殿)에 불이 났다. 용주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을 대웅보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전각은 호성전이다. 왜냐하면 용주사 창건의 의미가 호성전에 있기 때문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용주사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하여 만든 원찰이다.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묘소 이장의 공역이 끝나자 마자 용주사 건립을 시작했다. 사도세자의 명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찰을 만들자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정 김준혁칼럼 | 김준혁 한신대 교수 | 2020-08-21 17:11 [김준혁 칼럼] 수원청개구리는 살아야 합니다 [김준혁 칼럼] 수원청개구리는 살아야 합니다 수원청개구리는 살아야 합니다.수원 남쪽 끝 평리 들판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흙에 덮혀 죽은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의 영혼을 위한 수륙재를 지냈습니다.우리 조상들은 바다와 강, 그리고 천에서 죽은 뭇 생명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때마다 수륙재를 지냈습니다.'수원청개구리'는 수원이란 이름이 들어간 희귀종 청개구리입니다. 독특한 울음소리로 수원 들녁에 가득했지만 산업화로 인해 멸종되어가다가 수원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아 남아 평리 들판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수원시도 수원청개구리를 '수원이'란 캐릭터로 만들어 어린이를 비롯 김준혁칼럼 | 김준혁 한신대 교수 | 2020-05-22 16:03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정조의 수원 나무심기와 수원 수목원 설립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정조의 수원 나무심기와 수원 수목원 설립 조선시대는 풍수적인 면과 함께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나무를 공급받기 위하여 조정에서 서울 주변의 사산(四山)과 왕릉 또는 특별히 지정한 곳에서 나무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사산이란 북쪽의 북악, 남쪽의 목멱산, 서쪽의 인왕산, 동쪽의 낙산을 말함이었다.현종대에는 형조에서 8개 조항의 금제조(禁制條)를, 한성부에서 6개 조항의 금제조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산에서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령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죽은 소나무를 베어가자 한성부로 하여금 순찰케 하여 좋은 재목이면 영선(營繕) 김준혁칼럼 | 김준혁 한신대 교수 | 2020-05-13 13:34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개혁가 채제공의 등용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 [김준혁의 역사와 현실] 개혁가 채제공의 등용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 조선후기 정조시대의 정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가 번암 채제공이다. 남인의 영수로서 정조의 탕평정치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성호 이익의 학통을 이은 경세치용 실학의 주도자이기도 하였다.더불어 채제공은 조선 문화의 난숙기에 그 시대가 배출한 전형적인 성리학 정치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채제공에 대한 당대의 평가 역시 높았다. 다산 정약용은 채제공을 고금에 유례없는 하늘이 낸 인중호걸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하고 모든 백성들과 소통하며 만물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는 대 정치인으로 평가하였다.채제공 역시 김준혁칼럼 | 김준혁 한신대 교수 | 2020-04-28 09:59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