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동의 視角] 역사까지 망각하는 ‘권력욕심’ 그 무서움을 다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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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동의 視角] 역사까지 망각하는 ‘권력욕심’ 그 무서움을 다시 실감한다
  • 김갑동 대표이사
  • 승인 2021.09.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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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동 수원일보 대표이사 / 전 한국기자협회 인천·경기협회장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또 ‘현재의 거울이다’라는 말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제, 즉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지나온 역사는 어느 나라 것이든 상관없다. 시대도 문제되지 않는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 어느 것을 반추해도 부족함이 없어서다. 

이런 의미에서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를 보며 중국 고대 왕조 하(夏)나라를 생각해 본다. 

중국 역사에 기록돼 있듯 하나라 요·순(堯·舜) 시대는 백성이 주인인 태평시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위정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모델로 삼고 있다. 

이런 요·순시대 역사는 주변 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시대에 그랬다.

해서 당시 요·순 임금이 펼친 치국(治國)의 역사는 조선 군주들의 경연 주제로도 빠지지 않았다.

신하와 백성들도 요·순시대를 흠모하긴 마찬가지였다. 

성웅 이순신 장군의 부친이 두 아들의 이름을 이요신(李堯臣)과 이순신(李舜臣)으로 지었다는 기록만 봐도 그렇다.

요·순임금은 당대를 태평성대로 이끈 수많은 치적을 남겼다. 

역사 학자들은 이 가운데 백성들에게 언로(言路)의 길과 소통(疏通)의 길을 열어주는데 소홀히 하지 않은 그들의 덕을 첫째로 꼽는다. 

특히 요 임금은 이런 훌륭한 정치를 적극 도모한 군주로 유명하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당대를 최고의 태평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건 유능하고 현명한 인재가 중용되는 나라는 흥하지만 간사하고 아첨하며 무능한 자들이 판치는 나라는 망하게 돼있다.

요 임금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이 원리를 모범적으로 실천한 지도자였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낮추고 국민의 의견 듣기를 좋아했다.

뿐만 아니다. 나랏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잘못된 점이 없는지 늘 염려했다. 

게다가 군주지만 백성 앞에 항상 겸손했다. 

아울러 왕과 대소신료들과의 신분과 지위의 격차 때문에 일반 백성들이 조정에 직언(直言)하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같은 백성의 속 마음을 간파한 요 임금은 북을 궁궐 문 앞에 설치토록 했다. 

그리고 백성들은 누구든지 그 북을 두드려 왕에게 직접 간언이나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 신문고나 ‘청와대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요 임금의 선정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알 수 있다.

요 임금은 또한 군주의 잘못을 비판하는 글을 대자보로 붙일 수 있는 게시판도 궁궐 문 앞에 세웠다. 

그래서 백성들은 누구든지 군주와 관리들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괘서나 격쟁, 요즘의 신문과 다름없는 언로(言路)를 트게 한 것도 요임금이다.

고사성어 ‘간고방목(諫鼓謗木·간언하는 북과 비방하는 나무)’은 요임금의 이러한 명철로 생겨났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민정을 여과없이 직접 듣고 보면서 민심을 얻었기에 태평시대가 가능했던 하나라 요 임금 시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과 대통령 사이, 각자도생하려는 여당과 야당 사이의 의사소통이 실종된 작금의 현실에서 역사속 요 임금 시대가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특히 이럴 때 일수록 위정자들은 언로(言路)의 길과 소통(疏通)의 길을 연 요임금의 지혜도 다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대에 이미 있는 ‘간고방목’마저 ‘찢어’버리고, ‘패내’버리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만행에 언론자유가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역사의 교훈까지 망각하는 ‘권력욕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한번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