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자 如詩칼럼] 사과가 서로를 고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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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如詩칼럼] 사과가 서로를 고이듯
  • 정수자 시인
  • 승인 2021.09.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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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 시인

 

과일장수는 사과에 앉은 먼지를 하나하나 닦아준다
사과는 금세 반짝반짝 몸의 상처를 찾아낸다 몸의 중심을 잡는다
사과 위에 사과를 사과를 사과를 올려놓으면서
한 바구니의 사과 일가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 앞으로 코가 빨개져서 서로 웃고 지나가는 가족이 보인다
흐린 창문 밖으로 저들의 무릎이 더 반짝인다
-(이기인, 「흐린 창문 밖으로 보니」 전문)


가을은 어디서 오는가. 어디서 확 느끼는가. 어디서 더 짙어지고 있는가. 조금만 눈여겨보면 빨간 사과들이 가을의 행차를 먼저 알린다. 따가운 햇볕 사이 분주해진 바람도 가을 촉감을 사늘히 일러준다. 조금씩 물이 드는 가로수 잎사귀들도 가을, 가을 들려준다.

그런 속닥거림을 고맙게 받아드는 나날이다. 하지만 가을도 항상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늦장마를 데려와 잘 익고 있는 열매들을 쓰러뜨린다. 고비를 넘겼나 숨 돌리면 다시 태풍을 끌고 와 온 들판을 휘젓기도 한다. 그럼에도 잘 구워진 가을볕이 곳곳의 과일과 곡식을 고르게 찾아들고 익혀서 거둘 것을 주니 그저 숙여지는 자연의 순환이다.

시에서 엿보는 과일장수의 행위는 경건하다. 사과를 잘 닦아 진열하는 아침이 주변까지 “반짝반짝” 빛내준다. 하루를 시작하는 일에는 저렇듯 기도 같은 손짓이 들어 있다. 사과를 쌓고 쌓을 때 짓는 “행복한 표정”으로 가족의 저녁까지 환해지기를 바라게 되는 과일가게의 모습처럼. 그런 보통의 가족들이 모여 삶의 중심을 잡아갈 때 화평한 세상도 이어지는 것이리라. 

가을장마로 과수농가가 어렵다는 보도 때문인지 과일 선물이 많아졌다. 단맛이나 여문 맛이 예년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듯싶지만, 추석에는 과일상자를 더 많이 나눈 것 같다. 그 덕에 처치 곤란이라는 집도 있지만 선물이 여기저기 오갈수록 과수농가의 시름은 조금 펴졌을 게다. 시골의 어려움을 내 고향 일처럼 여기는 마음들이 아직 있어서 피해는 줄이고 즐거움은 키우니 살맛 돋우는 나눔 맛이다.  

도처에서 바닥 치는 신음이 들린다. 바닥을 치면 이제 오를 일밖에 없다지만, 그 또한 잦으면 힘이 떨어진다. 코로나19에 친 바닥을 여전히 파는 중이라고 낙담한 삶이 너무 많다. 모두 힘들지만 특히 소상공인들이 참담한 신음이 아프게 들린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려 애쓰는 무릎들, 그 모든 자리에 햇사과 같은 웃음이 어서 번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