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 수원현미경(39)] 권선구청사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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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39)] 권선구청사에 얽힌 이야기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10.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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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권선구청 전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권선구청 전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1988년 7월1일 수원시 조례 제1452호에 따라 장안구와 권선구가 함께 설치됐다. 이 때 권선구는 12개동을 관할하는 구(區)로 편제됐다. 관할 동으로는 매교동, 세류1동, 세류2동, 세류3동, 평동, 서둔동, 매산동, 고등동, 인계동, 매탄동, 원천동, 곡선동 등이었다.

권선구는 수원의 남서쪽을 관할하는 구이다. 권선구 역시 수원을 2개구로 나누다 보니 인구와 면적 등이 고려돼 결정됐다. 수원 남쪽구의 중심은 인계동과 권선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쪽을 대표하는 지명 또한 권선동이라 생각된다. '김충영의 수원현미경’ 23번째 기사 '팔달산의 원래 이름은 탑산’ 에서 밝힌 바 있다. 

권선 지명유래비. (사진=김충영 필자)
권선 지명유래비. (사진=김충영 필자)

권선(勸善)이라는 지명은 고려말 한림학사 망천(忘川) 이고(李皐)선생으로부터 비롯된 지명이다. 이고 선생은 고려가 쇠망하자 낙향해 팔달산 자락에서 살다가 적사리(赤寺里)로 이사 가서 살면서 학당을 열어 제자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즉,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항상 가르치고 몸소 실천했다. 이고 선생은 효심 또한 지극해 나라에서 권선리라는 지명을 사명(賜名)했다고 한다. 

옛 권선구청사이면서 옛 수원시청사. 현재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옛 권선구청사이면서 옛 수원시청사. 현재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런 연유로 1988년 구제가 실시되자 남쪽 구의 이름을 권선구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권선구청사는 1986년 말까지 수원시청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용했다. 수원시청이 인계동 현청사로 이전하자 구 시청은 수원시농촌지도소가 잠시 사용했다. 권선구청은 탑동 현청사로 이전하기 전까지 18년간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권선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완성단계에 이르자 경계지점의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다. 농로와 하천 등을 구역경계로 정하다보니 도로가 갑자기 끊기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1986년 6월 10일 권선토지구획정리 인접지구인 권선동과 곡반정동 일원 62만2921㎡(18만8433평)를 권선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했다. 

권선택지개발사업은 경기도가 추진했다. 사업추진은 1992년 12월 24일 시행인가를 얻었고 1996년 9월 30일 준공됐다. 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수원시는 현 수원농수산물도매시장 남쪽 권선동 1234번지에 권선구청부지를 확보했다. 그때는 이미 권선구청이 구 수원시청에 입주한 뒤였다. 

이러한 구상은 훗날 수원이 발전하면 동·서·남·북에 4개구가 될 것을 예측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원에 구(區)제도가 도입 된지 5년 만인 1993년 수원시 인구가 71만4272명으로 증가하게 됨에 따라 분구가 됐다. 장안구와 권선구 일부를 분할해 팔달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3년 11월 24일 수원시의 인구는 104만223명이었다. 이때 영통구가 분구됐다. 팔달구의 동쪽이 영통구가 됐다. 팔달구는 영통구를 분가시키고 남은 서쪽 부분과 장안구의 신안동, 고등동, 화서1동, 화서2동이 팔달구로 편제됐다. 권선구에서는 매교동과 고등동이 팔달구에 편입됐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권선구청이 소재한 매교동이 팔달구로 변경돼 권선구청이 팔달구 관할구역에 놓이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1993년 팔달구는 인계동 시청사 뒤편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 내에 위치한 빌딩을 임대해 개청했었다. 

논리대로라면 권선구청자리에 팔달구청이 입주해야 했다. 그리고 권선구청은 이미 마련된 권선동 구청예정부지에 새청사를 마련해 이전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수원에 문제가 있었다. 권선구청을 권선동에 지으면 수원의 관청이 동수원 쪽으로 편중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시청이 1987년 인계동에 입주한 이래 팔달구청 역시 1993년 인계동 시청 뒤에 들어섰다. 그리고 영통구청 역시 동수원 쪽에 위치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가뜩이나 서수원 지역은 수원비행장과 경부선철도가 있어 개발에 제약이 많았다. 특히 서울농대와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이 밀집하고 있어 개발이 안됨은 물론 주거환경 역시 열악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김용서 시장은 지역 안배 차원에 권선구청을 서수원에 배치하는 것으로 심중을 굳힌 듯했다. 또 한 가지는 당시 수원시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는데 도서관이 3개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민선3기 동안 도서관 4개를 더 짓겠다고 공약했었다.

도서관 3개는 수원시가 짓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005년 11월 21일 개관한 슬기샘도서관, 2005년 11월 22일 바른샘도서관, 2005년 11월 24일 지혜샘도서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개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도립도서관을 권선구청 예정지에 유치하고자 했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이 운영하는 도립도서관은 건립한지 오래돼 규모나 시설 면에서 열악해 새로이 짓는 구상을 할 때였다. 또 경기도교육청이 예산 확보가 어렵게 되자 김용서 시장은 권선구청 예정지 부지 일부를 경기도교육청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경기평생교육학습관 개관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경기평생교육학습관 개관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에 수원시 재산담당 부서는 법령에 위배돼 부당하다며 이를 반대했다. 그 담당자는 인사 조치됐다. 이후 수원시와 경기도교육청은 경기평생학습교육관 건물앞에 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공원조성은 수원시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기평생교육학습관은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했다. 이렇게 하여 경기평생교육학습관은 2008년 6월 2일 개관하게 됐다.  

경기평생교육학습관과 수원시가 조성한 공원. 뒤편은 임시로 사용중인 농수산물 도매시장.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경기평생교육학습관과 수원시가 조성한 공원. 뒤편은 임시로 사용중인 농수산물 도매시장.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후 2005년 수원시는 권선구 탑동 일원에 권선행정타운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수원에 위치한 행정기관에 의견을 조회한 결과 많은 기관이 입주를 희망했다. 당시 서부지역에 청사부지가 필요한 기관은 권선구청과 권선보건소, 서부경찰서, 서수원우체국, 경기종합노동복지회관, 산업인력공단 경기지사, 한국전력 서수원지사 등 7개 기관이었다. 

수원시는 입주 희망기관들의 필요면적을 신청받아 권선행정타운을 2005년 2월 27일 공용의 청사로 도시계획결정 고시했다. 이후 단지 실시설계를 거쳐 2005년 7월 18일 실시계획인가 고시를 함으로써 행정절차가 마무리 됐다. 이후 토지보상이 실시됐다.

권선구청사 기공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권선구청사 기공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권선구청은 2005년 9월 13일 권선행정타운 및 권선구청사 기공식을 가졌다. 권선구 신청사는 지하1층 지상2층 건물로 대지면적 2만6536㎡(8027평), 건축면적 4136㎡(1251평), 연면적 9289㎡(2,809평)를 건축해 2006년 3월 28일 준공행사를 가졌다.

권선구청사 이전 개청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권선구청사 이전 개청식.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권선구청은 서수원지역 탑동에 둥지를 튼 뒤 호매실 택지개발 사업이 시행됨으로써 서수원지역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권선구청이 촉진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