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에서도 경기를 관람하는 축구팬들. (사진=김우영 필자)
폭우 속에서도 경기를 관람하는 축구팬들. (사진=김우영 필자)

지난 일요일 밤 수원종합운동장에 갔다. 프로축구 1부 리그 수원FC와 대구FC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밤 수원지역에 폭우가 내렸다. 굳이 관람했다.

경기내내 강한 비가 쏟아졌다. 심할 때는 상대방 코너에서 차올리는 공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비가 많이 올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원FC 구단의 문자를 받고 경기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두어 군데 전화를 해서 함께 갈 사람을 찾으려 하다가 “이 빗속에 무슨 충성을 하겠다고 가느냐”는 핀잔을 들을까봐 혼자 나섰다.

빗줄기 속에서 축구경기를 본 것은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이었다.

내 고향인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는 전씨, 이씨, 서씨 집성촌이었다. 이른바 ‘3.8 따라지’인 우리 가족은 타성받이였지만 배척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오랫동안 이장을 하면서 마을을 이끌어 갔고 우리 4남매들도 마을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낯부끄러운 얘기지만 ‘우영이네’ 4남매는 요즘말로 ‘엄친아’들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마을 옆 야산엔 종중 묘지들이 있었고 그곳 공터엔 잔디가 잘 자라고 있어 동네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비가 오면 남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우중전(雨中戰) 축구경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미있었다. 자주 미끌어져 넘어지고 마음먹은 대로 공이 굴러가지 않아도 그저 즐거웠다. 비가 땀을 닦아주어 시원했고 넘어져도 큰 상처는 나지 않았다.

그 추억을 떠올리며 1만5000원짜리 일반석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입장했다. 어, 그런데 예상 밖으로 관중이 많았다. 이날의 유료 입장객은 2201명, 참으로 지극 정성으로 수원FC를 아끼는 ‘찐팬’들이다.

경기장에서는 이승우 선수의 팬서비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인회를 열어 어린이 팬들을 만난 뒤 그라운드에 등장, 팬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팬은 손수 제작한 수원FC 유니폼을 입고 이승우를 패러디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됐는데 이를 고마워한 이승우가 초청한 것이다.

이승우를 볼 생각은 못했다. 그는 지난달 16일 강원FC 전에서 퇴장당해 이날 대구전과 내일( 3일) 인천 유나이티드 전까지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우가 없는 경기는 불안했다. 수원FC는 전반 14분 정재용이 중거리포를 성공시킴으로써 앞서나갔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동점 골을 허용해 1-1이 됐다. 후반 21분 김승준마저 퇴장당해 10명이 싸워야했다. 수적 열세에다 공격수의 무능까지 겹쳐 수세에 몰리던 끝에 후반 41분에는 역전골까지 허용해 1-2, 패색이 짙었다.

감독이 뒤늦게 최전방 공격수를 바꿀 때 ‘진즉에 바꿨어야지...이제 와서 무슨’이라며 속으로 욕을 하고 있을 때 기적처럼 그 ‘거저’를 바꾸었다.

수원FC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패배 직전, 무서운 뒷심이 발휘된 것이다.

후반 추가시간 적진을 뚫은 정재용이 문전에서 골키퍼와 마주해 슈팅을 하려는 결정적인 순간 상대 선수가 심하게 옷을 잡아 당겼다. "야 이 시키 그러면 안 되지!!"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는 최전방 공격수로 교체 출전한 김현. 그는 골키퍼를 현혹시키는 몸짓으로 여유롭게 골을 성공시켰고 경기장은 함성과 빗줄기가 뒤엉켜 분위기가 고조됐다.

수원FC와 대구FC의 우중전(雨中戰). (사진=김우영 필자)
수원FC와 대구FC의 우중전(雨中戰). (사진=김우영 필자)

극적인 무승부였다. 경기가 끝난 뒤 사력을 다해 싸운 두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드러누웠고 관중들은 뜨거운 환호로 이들을 격려했다.

이것이 축구다. 여전히 거세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생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아니 사실은 오늘 경기의 여운을 함께 나눌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에잇, 내 주변 인간들은 이런 재미를 모른다니까. 그저 술만 마시자고 하고.

오는 6일엔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와 수원삼성블루윙즈 간의 ‘수원더비’가 열린다.

나는 두 팀 모두 사랑한다. 그래서 어느 쪽 응원석에 가서 앉을까 고민이다.

2016년 10월 2일, 수원월드컵 구장에서 열린 수원더비 때는 상대적으로 약체라고 생각했던 수원FC 응원석에 앉았다. 이날도 빗속에서 진행된 경기는 우리나라 축구사에 남을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수원FC는 후반 추가시간 결승 골로 5:4로 승리했다.

올해는 수원삼성블루윙즈가 약세이니 그쪽에 가서 앉아볼까.

수원삼성은 K리그1 23라운드를 마치는 동안 4승 9무 10패를 기록하며 12팀 중 11위(승점 21)에 머무르고 있다.

수원FC는 6위(8승 5무 10패, 승점29)로 상위 스플릿 권이다.

이러다간 명문 수원삼성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 그건 안 된다. 수원의 자존심 아닌가.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지는 그날 매표소 앞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 다음 회(9일자) '광교칼럼'은 필자 여름휴가로 쉽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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