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국토해양부)

수원에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된 것은 수원도시계획 2기인 1972년 8월 11일이었다. 도시계획 재정비 때 도시계획에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린벨트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62년부터다. 이 시기부터 세 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나라살림과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됐다. 농촌 사람들은 새로운 일터를 찾아 도시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도시의 인구는 팽창했다. 서울시의 경우 해방 전만해도 100만 명을 넘지 못하던 것이 1972년에는 600만 명이 됐다. 당시 전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 몰림으로써 과밀도시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 많은 인구가 집결하게 되면 교통난과 학교, 주택, 상수도, 환경 등과 많은 도시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서울의 경우 휴전선과 가까워 남침에 대비해 인구와 산업시설의 집중을 억제할 필요성이 요구됐다.

우리나라에서 그린벨트는 1971년 6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주관한 회의에서 처음 제시됐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지점에서 서울은 도로 폭이30m로 넓은데 경기도는 7m로 좁아지는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도록 건설부에 지시했다. 수도권 도로망 외곽에 두 줄로 그린벨트를 쳐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앞선 1971년 1월 19일 도시계획법이 개정되면서 개발제한구역 제도가 도입됐다. 누구의 생각에서 개발제한구역이 도입됐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미 박정희 대통령은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플랜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1970년 12월 3일 수원시도시계획도면, 1972년 8월 11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도입이전 도시계획도면이다. (자료=수원시)
1970년 12월 3일 수원시도시계획도면. 1972년 8월 11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도입이전 도시계획도면이다. (자료=수원시)
1972. 8. 11. 수원도시계획재정비 도면, 1970년 12월 3일 도시계획도면에서 변경된 도면이다. 개발제한구역 지정과 경부 영동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계획적인 개발을 위해 용인군 수지면, 기흥면, 구성면 일부와 화성군 태안면 일부가 수원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됐다. 특이점은 신갈저수지가 유원지로 결정됐다. (자료=수원시) 
1972년 8월 11일 수원도시계획재정비 도면. 1970년 12월 3일 도시계획도면에서 변경된 도면이다. 개발제한구역 지정과 경부 영동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계획적인 개발을 위해 용인군 수지면, 기흥면, 구성면 일부와 화성군 태안면 일부가 수원도시계획구역에 편입됐다. 특이점은 신갈저수지가 유원지로 결정됐다. (자료=수원시) 

이후 실무진들의 준비를 거쳐 1971년 7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 반경 15km를 따라 2~10km 지역의 454.2㎢가 우리나라 첫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이어 1972년 8월 11일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이 2배로 확대됐다.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지름 30km 이내의 6개 위성도시권까지 추진됐다. 
수원도 이때 포함됐다. 1977년 4월 여수권역까지 8차에 걸쳐 14개 도시가 지정돼 전 국토의 5.4%에 해당하는 엄청난 면적의 땅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됐다. 

광교저수지 제방에 위치한 개발제한구역 표석. (사진=김충영 필자)
광교저수지 제방에 위치한 개발제한구역 표석. (사진=김충영 필자)

개발제한구역을 지정 후 후속 작업이 진행돼야 했는데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 표시된 경계선을 현장에 표시하기 위해 100m 간격으로 경계표석을 세우고 감시가 용이한 곳에 감시초소를 설치해 그린벨트 훼손을 철저히 단속했다.  

감시초소에 근무하는 그린벨트 감시원이 상시단속을 실시했다. 그리고 시장, 군수는 월1회 단속, 시.도지사는 3개월마다 1회 단속, 건설부는 년 1회 합동단속과 청와대 특명반, 경찰의 암행감찰 등으로 물샐틈없는 불법행위 단속을 실시했다.

이렇게 중첩된 단속은 주민생활을 간섭하기도 하고 과도한 단속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어 민원을 초래했다. 일례로 송아지를 낳아서 외양간을 비닐로 막사를 넓혔는데 그린벨트 단속원이 적발해 철거하는 과잉단속도 비일비재했다.

시장.군수는 매 건축물마다 건축물관리대장을 작성해 증.개축 여부를 점검했다. 시.군에서는 불법행위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매년 항공사진을 촬영, 점검하는 등 그린벨트를 과도하게 단속했다.

당시 개발제한구역의 위법행위 점검결과를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함에 따라 관계공무원들의 징계가 많아지자 그린벨트 업무를 기피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린벨트의 지정은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으나 그린벨트의 80%가 사유지여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급작스럽게 추진됨에 따라 사전조사가 미흡, 시가지나 취락지역이 개발제한구역에 포함되는 등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단 한건의 그린벨트 해제지역이 없었지만,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사유재산 침해로 인한 주민불만이 제기되자 각종 선거 때마다 그린벨트 제도개선이 선거공약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1990년 10월 ‘도시계획법(현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 조치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하고, 개발제한구역 내 주민생활의 불편해소를 위해 생업시설 확대, 여가·휴식 공간 활용 등을 위해 공공건물·체육시설 설치와 건축물의 신·증축을 허용하는 등 대폭적으로 규제를 완화했다. 

그리고 1999년 6월에는 개발제한구역에 근린시설 신축을 허용해 건폐율 20%, 용적률 100% 범위 안에서 3층 이하의 단독주택은 물론 약국과 독서실 등 26개 유형의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할 수 있게 완화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린벨트 전면 해제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집권 이후인 1998년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를 만들어 개발제한구역의 전면조정에 들어갔다. 1999년 7월 전국 개발제한구역 가운데 춘천, 청주, 전주, 여수, 진주, 통영, 제주권 등 7개 중소도시권역을 전면 해제키로 방침이 결정됐다. 

그 결과 2001년 8월 처음으로 제주권이, 2002년 12월까지 강원 춘천, 충북 청주시, 전남 여수·여천권 등 4곳이 개발제한구역에서 전면 해제됐다. 2003년 6월 전주에 이어 진주, 통영 지역의 그린벨트가 해제됨으로써 7개 중·소도시의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2003년 수원서부지역 그린벨트 해제전 모습. (사진=수원시항공사진써비스)
2003년 수원서부지역 그린벨트 해제 전 모습.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2021년 7월 수원서부지역 모습, 칠보산 앞쪽에 수원호매실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완료된 모습이 보인다. 상단 외쪽으로 수원당수공공주택지구조성사업이 진행중인 것이 보인다.
2021년 7월 수원서부지역 모습. 칠보산 앞쪽에 수원호매실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완료된 모습이 보인다. 상단 왼쪽으로 수원당수공공주택지구조성사업이 진행중인 것이 보인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전면해제에서 제외된 수도권 지역은 시.군별로 그린벨트면적 등이 고려돼 해제 면적이 시달됐다. 수원은 북쪽에 36.5㎢가 지정됨을 감안해 호매실.금곡동지역에 수원호매실공공주택지구조성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2005년 12월 26일 298만㎡가 해제됐다.

더불어 서수원권 중 20가구 이상 거주하는 6개 집단취락마을인 금곡동의 경우, 상촌마을(2만8000㎡), 중촌마을(5만3000㎡), 호매실동은 가리미마을(3만2000㎡), 원호매실마을(8만6000㎡), 자목마을(7만1000㎡)이 포함됐다. 또 입북동은 벌터마을(6만3000㎡)도 해제돼 모두 10만평(33만㎡)이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2016년~2021년 12월까지 추진된 수원당수 공공주택지구조성사업 96만9648㎡(29만3000평)가 2018년 1월 4일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됐다. 수원당수2 공공주택지구사업으로 64만8000㎡(21만평)가 사업이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그린벨트제도는 이제 50년을 맞았다. 그린벨트 제도 도입으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막고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제를 달성했다. 수원의 경우 광교산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여있어 시민들은 쾌적한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제 그린벨트 50년이 넘은 지금 그린벨트 제도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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